프롤로그
민사소송을 시작할 때는
‘내가 반드시 이길 것이다 ‘라는 생각으로 시작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제 마음속에는
‘과연 법원이 이 사실을 어떻게 볼까?’라는 질문이 더 컸습니다.
민사소송을 결정하고 나서 증거자료로 수많은 서류를 준비하고,
증거를 하나씩 정리하며,
몇 번의 준비서면을 제출하는 동안에도
저는 결과를 단정하지 않았습니다.
민사소송은 감정으로 결정되는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제,
제가 할 수 있는 대부분의 일은 끝났습니다.
남은 것은 단 하나.
법원의 판단입니다.
사람은 결과를 미리 알고 싶어 합니다
사람은 기다리는 시간을 가장 힘들어합니다.
시험을 보고도 결과를 기다리고,
면접을 보고도 발표를 기다리며,
병원 검사를 받고도 결과를 기다립니다.
결과를 알 수 없는 시간은
사람을 가장 불안하게 만듭니다.
민사소송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준비서면을 제출하고 나면
‘판사님은 어떻게 생각하실까?’
‘상대방의 주장을 받아들일까?’
‘내 증거는 충분했을까?’
이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계속 맴돌았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정답은 알 수 없었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끝났다
이번 민사소송을 진행하면서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했습니다.
거래내역을 하나씩 확인했습니다.
통화기록도 다시 살펴보았습니다.
증권사의 답변도 비교했습니다.
금융감독원의 회신문도 정리했습니다.
전자소송 홈페이지에 수없이 접속하며
사건 진행 상황도 확인했습니다.
새로운 자료가 발견되면
다시 준비서면을 작성했습니다.
문장을 몇 번이고 수정하며
판사가 읽기 쉽도록 정리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때로는 새벽까지 자료를 정리한 날도 있었고,
출근하기 전 잠깐의 시간에도
증거를 다시 확인했습니다.
돌이켜 보면 저는 이 민사소송을 진행하는 가운데
후회가 남지 않을 만큼 최선을 다했습니다.
*민사소송 이야기 제 1편 제5장
*https://ecfs.scourt.go.kr/psp/index.on
마지막까지 사실관계를 바로잡기 위해
재판이 거의 마무리되어 가던 시점에도 새로운 쟁점은 남아 있었습니다.
피고 측은 하나의 녹취록을 증거자료로 제출했습니다.
저도 그 내용을 여러 번 확인했습니다.
처음에는 법원에 제출된 자료이니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녹취록을 반복해서 듣고, 당시의 상황과 다른 자료들을 다시 비교해 보면서 한 가지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기억하고 있는 사실과 녹취록의 해석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었습니다.
그 차이가 사건의 판단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냥 넘어가지 않기로 했습니다.
감정적으로 반박하기보다, 어떤 부분이 사실관계와 다르다고 판단하는지 하나씩 정리했습니다.
관련 자료를 다시 확인하고, 그 내용을 준비서면으로 작성하여 법원에 제출했습니다.
혹시 이미 늦은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민사소송에서 재판이 끝날 때까지 사실관계를 정확하게 설명하는 것은 당사자의 책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제가 확인한 사실은 법원에 전달해야 후회가 남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그 준비서면을 제출하고 나서야 비로소 ‘이제 정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모두 마쳤다.’라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 이후의 판단은 더 이상 제 몫이 아니라 법원의 몫이었습니다.
민사소송이 정말 생각보다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판결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사실을 하나 깨달았습니다.
소송은 원고가 판결하는 것이 아닙니다.
피고도 판결하지 않습니다.
인터넷 댓글이 판결하는 것도 아닙니다.
주변 사람들이 “이길 것 같다.”
“질 것 같다.”라고 말한다고 해서
그 말이 판결이 되지는 않습니다.
오직 법원이 제출된 증거와 법률,
그리고 사실관계를 종합하여 판단합니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는 순간,
조금은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판사는 감정보다 증거를 본다
소송을 진행하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 가운데 하나가 있습니다.
“억울하면 이기는 것 아닌가요?”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억울함만으로는 부족했습니다.
주장만으로도 부족했습니다.
법원은 무엇이 사실인지,
그 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 자료가 있는지를 확인합니다.
그래서 저는 감정보다는 자료를,
분노보다는 사실을,
추측보다는 기록을 남기려고 노력했습니다.
그 과정은 쉽지 않았지만,
결국 그것이 민사소송의 기본이라는 것을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기다림도 소송의 일부였다
재판은 법정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기다리는 시간도 소송의 일부였습니다.
준비서면을 제출하고 기다리는 시간.
상대방의 답변을 기다리는 시간.
재판기일을 기다리는 시간.
그리고 선고를 기다리는 시간.
그 시간은 생각보다 길었습니다.
때로는 아무런 변화가 없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전자소송 홈페이지에 접속해도
며칠 동안 아무 변화가 없던 날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멈춘 것은 아니었습니다.
법원은 사건을 검토하고 있었고,
각자의 자리에서 절차는 계속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그 사실을 이해한 뒤에는 조급함도 조금씩 줄어들었습니다.
후회는 남기고 싶지 않았다
사람은 결과보다
최선을 다하지 못한 일을 더 오래 후회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는 한 장의 준비서면이라도
대충 제출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한 줄의 문장도
가능하면 더 명확하게 쓰려고 했습니다.
증거 하나도
빠뜨리지 않으려고 여러 번 확인했습니다.
그렇게 하나씩 쌓인 자료들이
지금의 사건기록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후회할 이유가 없습니다.
이 소송이 제게 남긴 것
판결이 어떻게 나오든
이번 소송은 제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사실을 기록하는 습관.
증거를 확인하는 태도.
감정보다 논리를 우선하는 자세.
그리고 기다릴 줄 아는 마음.
예전에는
기다림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압니다.
기다림은 포기하는 시간이 아니라,
결과를 받아들일 준비를 하는 시간이라는 것을.
결국 법원이 판단할 것이다
이제 남은 것은 많지 않습니다.
사건기록은 법원에 제출되었습니다.
주장도, 증거도, 설명도 모두 기록 속에 담겨 있습니다.
이제 그 기록을 바탕으로 법원이 판단할 것입니다.
저는 그 판단을 존중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물론 사람인 이상 기대도 있고 긴장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마음은 담담함입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끝났습니다.
이제는 법원의 시간입니다.
에필로그
이 글을 읽고 계신 분 가운데도
어쩌면 재판을 기다리고 있는 분이 있을지 모릅니다.
그 기다림이 얼마나 길고,
얼마나 불안한지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결과를 서두른다고 판결이 빨라지지는 않습니다.
남은 시간을 불안으로 채우기보다,
오늘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저 역시 판결을 예측하지 않겠습니다.
희망도, 절망도 미리 말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제가 믿는 것은 하나입니다.
제출된 기록은 거짓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 법원이 판단할 것입니다.
